미지근한 온도의 철학
사실은, 민호 형을 사랑하는 이 시절이 한 때로 끝나기를 원치 않는다.
아무리 애를 쓰고 막아보려 한 대도 이 시절을 붙잡기는 어려울 거라는 걸 머리로는 완벽히 이해했다고 생각했는데.
여름의 끝에서, 서른여덟 편의 이야기
사실은, 민호 형을 사랑하는 이 시절이 한 때로 끝나기를 원치 않는다.
아무리 애를 쓰고 막아보려 한 대도 이 시절을 붙잡기는 어려울 거라는 걸 머리로는 완벽히 이해했다고 생각했는데.
지랄 맞은 여름의 시작.
뜨겁게 내리쬐는 해를 손바닥으로 차양하며 지성이 조용히 읊조렸다. 그 <사람 하나 죽일수있을거같은 날씨>가, 그 지독한 계절이 돌아왔다.
아마도 제3자가 여기까지 지켜봤다면 현진의 행동이 꽤나 괴상해 보일 수도 있겠다. 사실 황현진이 이만큼이나 유별나게 구는 이유는 따로 있다. 그러니까 그 이유인즉,
황현진 23세 우성 알파 그리고 그 옆에 앉은 한지성, 똑같이 23세,
그리고,
“내 생각엔 우리가 좀 특별한 거 같거든.”
“무슨 소리를….”
“그 저주라는 거, 나는 피했다고.”
여름, 감기. 다시 감고 싶은 그 계절.
사랑이라기에는 설익었고, 우정이라기에는 너무 물러버렸던.
풋풋하고도 물렁했던 여름날의 첫사랑을, 당신은 기억하시나요?
우리는 오늘도 자신의 가치를 증명하기 위해 살아간다. 하지만 증명하지 못한 하루가 이어진다고 해서, 우리가 살아온 삶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그러니 오늘 하루만큼은 작은 것에도 웃을 수 있기를.
가장 오래된 새벽녘이 길을 열어주는 날, 널 찾아 다시 떠날테니.
화림고등학교 2학년 3반은 여학우의 발걸음이 끊기지 않는다.
이유라고 하면 당연히 황현진 때문이다.화림고 재학생이라면 모를 수가 없는 그 이름,
황현진.
그런 남자였다. 지성과 7년째 연애중인 이민호라는 남자는. 가장 불규칙한 삶을 살아갈 수 있는 작곡하는 한지성을 규칙적으로 살게하는, 한지성에게서 없어서는 안되는 한지성의 가장 큰 부분.
나에게 여름은 깊은 심해였다.
비가 정말 싫었다. 비가 오는 소리만 들리면 그 쏟아지는 비에 침수되어 날 당장이라도 질식시켜버릴 것만 같은 느낌이 들었다. 깊은 심해에 빠져 숨도 쉬지 못하는, 나에게 여름은 그런 존재였다.
그리고 형은 나에게 수면 위에서 내려오는 한 줄기 빛, 나의 하나뿐인 구원이었다.
[ 익명: 3학년 이민호 선배! 이번 경기도 보러 갈게요! 화이팅 하세요!! ]
숨을 고르느라 바삐 움직이는 빨간 농구 유니폼 위에 하얀색 글씨로 선명하게 보이는 이민호 세 글자.
'아...!'
저 사람이 이민호였다.
매미유충은 땅속에서 약 7년의 시간을 견디며 지낸대. 기나긴 시간이 지나고 나무위로 올라가 껍질을 벗고 성충이 된대. 그리구 짝짓기를 위해 열심히 소리를 내면서 살아가는 곤충인거야.
내가
할게
절대
네가 직접 먹지마 한지성
사랑에는 유통기한이 있다.
한지성의 사랑은 보통 아침까지였다.
이민호와 한지성은 좆됐다.
"시발."
정확히는 한지성만 좆됐다.
원래도 그랬지만, 이제 아무도 안 믿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를테면 지금도 멀어져가는 사람과 자신이 알고 지낸 지 8년 된 동문이라는 것이나 그 사람과 사귄 지 1년 남짓한 연인 사이였던 것이나.
헤어진 뒤에 회사 부사수로 다시 만났다는 건.
"방 크리스토퍼 찬, 이라고 했죠?"
"네, 편집장님."
"나랑 일 하나 해볼래요?"
눈이 시리도록 푸른 여름이었다.
안경알을 통해 난반사된 햇살 탓에 눈꺼풀이 반쯤 감겼다. 조금 시선을 내리면 난간에 두 발을 대고 매달려 콧노래를 흥얼거리는 얼굴이 보인다. 한지성이다. 보송보송한 머리가 소금기 섞인 바람에 흔들리자 기분이 좋은지 몸을 팔랑거리는 걔다.
"너를 보면 자꾸 안 하던 짓을 하게 되고 신경이 다 너에게 가 있는데."
"너도 알잖아, 나 그런 게 제일 질색인 거."
넌 무슨 고백을 차는 거랑 동시에 하냐.
"그래."
사랑이라는 것을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다. 제 입에 들어온 아이스바를 씹으며 현진이 눈을 내리깔았다. 그래도, 너를 좋아하면서 한 가지는 알았다.
이럴 줄 알았으면 좋아하지 말 걸 그랬다고.
나라는 사람의 깊은 내면에 자리 잡은 '회피형' 기제는, 양정인이라는 깊고 축축한 늪에서 그렇게 싹을 틔웠다. 누군가가 나에게 깊이 다가오려 하면 본능적으로 도망치고 싶어 하는 병적인 습관이 완성된 것이었다.
턱이 언제 움직일지 재는 듯 눈도 몸도 아닌 그 어딘가를 빤히 보는 시선에 지성은 버티지 못하고 고개를 끄덕였다.
“잘 생각했네. 내 조건은 딱 하나, 내 아내가 되는 것.”
또래 친구가 생긴 것이 좋았다. 늘 맞고, 무시당하던 일상은 똑같았지만 그래도 승민을 만나면 모든 게 잊혀지는 것 같았다.
긁혔다. 스스로 게이인 거 인정한 것도 얼마 전인데. 김승민한테 걸리기는 싫었다. 그래서 완전 발끈해버렸다. 어차피 나 혼자 게이라고 그 형한테 고백할 수 있는 것도 아니고. 그 형이 게이인지 아닌지도 모르는데. ...그것부터 알아봐야 하나?